악마는 ‘사이드미러’에 있다

전 최근 일본의 혼다 대표 제품으로 알려진 SUV 신형 ‘CR-V 터보’를 타봤습니다. 6년 만에 풀체인지를 했다네요. 도심과 고속도로를 달려봤습니다. 나쁘지 않았어요. 밟는 대로 크게 출렁거리지 않고 속도가 올라갔고, ADAS(첨단 운전자 지원시스템)도 혁신적이진 않았지만 잘 작동했습니다. 차선 이탈 방지 기능을 작동시키고 앞차 간격을 적당히 멀게(겁이 많거든요) 설정하고 나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을 세팅했더니 곡선 구간에서도 핸들이 빳빳하게 움직이지 않더군요. 요즘 웬만한 신차는 다 이 기능이 있는데 뒤지지 않더군요. 특히 최근 여러 차를 타봤는데 같은 기능을 썼을 때 이렇게 핸들이 강하게 버틴 건 처음이라 그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연비도 신경 안 쓰고 탔는데 공인 연비(12.1km/L)보다 조금 더 나왔어요.

여기까지 읽으시니 시승기나 차 소개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해 마시고 좀 더 읽어주세요.

혼다가 CR-V를 내놓으면서 핵심 포인트로 잡은 건 가격이었습니다. 4190만원이에요. 우선 이 차 언뜻 보면 현대차 싼타페와 엇비슷해 보였어요. 전장(차 전체 길이)이 4705mm, 휠베이스(차의 앞바퀴 중심과 뒷바퀴 중심 사이 거리)가 2700mm인데 차 앞뒤를 직사각형 모양으로 직선을 강조한 디자인을 했더군요. 그 덕에 차가 살짝 커보이는 느낌이 났어요. 싼타페는 전장 4785~4800mm·휠베이스 2765mm로 더 큰데 말이죠. 싼타페 차값은 2.5 가솔린 터보가 3252만원부터 시작합니다.

혼다가 이렇게 가격을 정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더라고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수입차 시장에서 잘나가는(?) 독일차가 아닌 ‘마이너’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도 됐습니다. 우선 환율입니다. 혼다코리아는 현재 미국 공장에서 차를 가져오는데 현대차나 기아와 정반대로 고환율로 수입 가격이 높다네요. 여기서 일차적으로 마진율이 떨어집니다. 둘째는 이미 치열한 SUV 시장이죠. 한때는 현대차·기아가 도요타·혼다 잡겠다며 차를 내놓곤 했는데, 이제 그들이 독일차나 현대차·기아 사이에 끼어서 고전하고 있죠.

특히 현대차·기아 제품의 편의사양과 맞먹으려면 그 제품부터 3000~4000만원 이상 비싼 수입 SUV 정도를 가져와야 비견될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혼다는 이런 편의사양 경쟁을 해서 차값을 올릴 바에 내부를 가볍게 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수입차인데 이 정도 가격이다!”란 걸 외치고 싶었던 거죠. 저는 앞서 타봤던 폴크스바겐의 전기차 ID.4도 내부가 아주 검소(?)한 것도 생각이 나더군요. 두 브랜드가 처지도 비슷하고.

혼다는 제품 외에 판매 시스템도 바꿨습니다. 온라인 100%로 차를 팔고 전시장에 계신 분들은 딜러가 아닌 혼다 큐레이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로 한 겁니다. 소개만 한다는 거죠. 할인 공세를 펴지 않겠다는 것도 있지만 이를 유통망 간소화로 보는 시각이 더 많습니다. 딜러사로 빠지는 마진을 더 줄였다는 거죠.

이런 요소가 반영된 혼다 CR-V를 보면서 경영학원론에 나오는 것들을 떠올렸습니다. 식사로 치면 재료비가 오르고(환율), 식당 손님(판매량)이 줄자 그간 잘 알려진 메인 메뉴(주행 성능과 주행 보조 장치 등)는 빠지지 않게 갖추고, 애피타이저나 디저트(실내 편의장치)는 간소화하고 서빙하는 사람 숫자(유통망)는 구조조정한 식입니다.

이런 합리적인 선택들이 잘 조합된 결과물로 검소하지만 기본은 챙긴 차라는 점이 충분히 와 닿았습니다. 저는 그때쯤 이 차가 마음에 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마음에 품지 못한 이유가 하나 생겼습니다. ‘사이드미러’가 문제였어요.

이 차의 사이드미러가 자동으로 접히거나 펴지지 않는 겁니다. 시동을 켜고 끌 때 사이드미러가 꿈쩍도 않습니다. 차 문 손잡이 쪽 창문 조작 버튼 아래의 별도 버튼을 눌러야 접거나 펴졌죠. 2023년에 나온 신차에 어떻게 이런 일이! 직업상(?) 최신 차를 많이 타는지라 저는 차를 시승하는 동안 예닐곱 차례를 차에서 내렸다 다시 올라타 시동을 걸고 사이드미러를 접었습니다.

미국 공장에서 차를 가져오는 게 문제랍니다. 픽업트럭도 예사로 보이는 미국은 주차장이 워낙 넓다 보니(!) 굳이 사이드미러 접는 옵션을 기본 탑재하지 않는다는 거죠. 한국용으로 이 옵션을 넣자고 하기에는 또 비용이 추가될 거 같고 그래서 접었다는 게 혼다 측 설명입니다. 전체 차값과 사이드미러의 성능 디테일 중 하나를 선택한 거죠.

어찌 보면 정~말 사소한 문제입니다만, 저는 다른 옵션을 빼더라도 이걸 넣는 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이드미러는 차 타고 내릴 때마다 접어야 하는 게 한국 운전자의 비애 아니겠습니까. 2023년에 풀체인지 신차를 샀는데, 이게 안 된다면 저 같은 운전자가 또 있을 경우 그 분은 그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요? 실제 과거 이런 차를 산 소비자의 경우 공업소 가서 몇만원에 DIY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 경우도 많더라고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하죠. 물론 이 사이드미러 버튼이 판매량에 영향을 미칠지 아닐지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만, 뭔가 사소한데 중요한 것이 빠진 듯한 찜찜한 느낌이 남았답니다. 저만 그랬길 바랍니다. 저는 신형 CR-V의 선전을 기원하니까요.

한해 쏟아지는 차들을 제가 다 볼 순 없지만, 모든 자동차 제작사들은 늘 선택의 문제를 마주합니다. 잘된 선택을 내려 시장에서 인정받는 경우도 있고, 치명적인 선택을 내려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죠. 저조한 판매량 앞에 눈물을 쏟기도 하고 판매는 잘되는데 팔린 만큼 욕도 많이 먹는 일도 있습니다. 그럼 이 선택을 어떻게 잘할 것인가. 그게 실력 아닐까요.

이 실력은 고위 임원의 통찰력일 수도 있고, UX(User Experience)팀의 능력일 수도 있고 마케터의 판단력일 수도 있고 문제가 생겨도 잘 가리는 커뮤니케이션의 역량일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다만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평소 소비자가 어떻게 느낄지 늘 시장을 주시하는 사람이 생기게 하는 문화, 그 사람이 상급자에게 이런 문제를 기탄없이 지적할 수 있는 문화, 그걸 함께 논의할 수 있는 문화, 변화를 수용하는 문화. 그리고 그 문화를 만들고 확장시킬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말이죠.

디테일은 담당자 한 명이 아니라 회사의 구성원 모두가 만들어 가는 것 같습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소한 문제, 그냥 넘기지 말고 공론화하는 문화를 우리가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회사가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조선일보 정한국 차장
202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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