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과 포니 쿠페의 공통점을 아시나요

올해 6학년이 된 딸아이는 요즘 제게 부쩍 자주 휴대전화를 새로 사달라는 말을 합니다. 애플의 ‘아이폰’이 갖고 싶대요. 100만원 안팎 하는 전화기를 사주려니 “헉!”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지 뭡니까. 지금 가진 ‘갤럭시A’도 충분히 성능이 좋은 것 같다면서 한참 아이를 말렸습니다.

한동안 아이가 휴대전화로 무엇을 하는지 유심히, 그리고 몰래 지켜봤습니다. 고성능이 필요한 휴대전화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친구와 카톡을 하면서 킥킥대거나 이런저런 사진을 찍으며 카톡 프로필을 계속 바꾸더군요. 그리고 유튜브로 좋아하는 아이돌 걸그룹 영상도 주로 봤습니다.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왜 아이폰을 사줘야 해? 아빠가 쓰는 갤럭시 S22도 좋은데 이거 줄까?”

아이의 대답은 딱 세 마디였습니다. “아니, 옛날 거라도 아이폰 갖고 싶어” “요즘 친구들은 다 아이폰이야” “아이폰이 사진이 잘 나와”

스마트폰이 세계를 휩쓸기 시작할 무렵 한참 취업 준비를 하던 저는 비싼 아이폰은 엄두도 못 냈고, 입사 후 회사에서 받은 첫 스마트폰이 갤럭시 시리즈였기에 여태껏 갤럭시의 세계만 알고 지냈습니다. 또 기자들의 최대 고민 중 하나는 ‘통화 중 녹음’인 데(늘 녹음하는 건 아닙니다!), 아이폰은 녹음하려면 유료 앱을 써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런 저였기에 아이폰의 어떤 점이 아이에게 소비 충동을 일으키는 건지 궁금했습니다.

제 아이의 세 마디를 약간의 억지를 섞어서 좀 있어 보이게 바꾸면 이렇지 않을까요. ‘브랜드’ ‘10대 여성들의 트렌드’ 그리고 ‘활용도’. 어떻습니까. 그럴듯한가요? 애플 또는 아이폰이라는 브랜드가 붙은 예쁜 기기를 쥔 채, 또래들과 예쁜 사진을 찍으면서 놀고 싶은 거죠. 애플이 이런 직관적이고 단순한 ‘스토리’를 제품에 입혀온 것이 어느덧 초등학교나 중학교에도 널리 퍼졌다고 합니다.

한국갤럽이 작년 7월 벌인 조사에서 전체 스마트폰 사용자 가운데 삼성전자 갤럭시 이용자는 66%, 아이폰 이용자는 20%로 나타났는데 젊은 세대는 양상이 달랐습니다. 18~29세에서는 아이폰이 52%, 갤럭시가 44%였고 30대에서도 아이폰 사용자가 42%에 달했습니다. 40대를 넘어가야 갤럭시 이용자가 훨씬 비중이 크다는 거죠.

자동차업계를 출입하면서 종종 직관적이고 매력적인 ‘스토리’의 중요성에 대해 느낍니다. 제품에 대해 기사를 많이 쓰지만 저는 ‘토크’나 ‘마력’ 같은 출력을 숫자로 보여주고 제로백이 얼마인지 써주고 하는 것들이 일반 소비자들에게 얼마나 소구력이 있는지 사실 고민입니다. SUV의 경우 ‘차박’이 되냐 안 되냐, 평평하게 바닥이 만들어 지느냐 아니냐란 단순한 물음이 결정타인 경우도 있더군요. 탁 트인 밤하늘을 즐길 수 있는 차라는 단순한 스토리가 나오니까요.

한때 자동차 엔진이 ‘감마’ 엔진인지 ‘세타’ 엔진인지, 가솔린 분사 방식이 ‘GDI’인지 뭔지, 변속기는 몇단인지 등 숫자나 용어 하나하나에 목을 매었던 시기가 있었던 게 기억이 나시나요. 하지만 지금 아이오닉5,6에 들어가는 전기 모터 이름이나 그 모터를 누가 만드는지도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물론 스토리가 하루 아침에 쌓이는 건 아닐 겁니다. 제가 8년 만에 자동차 분야 담당을 하면서 들리는 현대차그룹의 스토리는 예전과는 확연하게 다르거든요. 유럽이나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한국에 오면 꼭 제네시스를 타본다거나, 아이오닉을 궁금해한다거나, 현대차·기아의 전략을 브리핑 해달라고 한다고 합니다. 어때요 이 또한 현대차·기아에 대한 직관적인 또 하나의 스토리 아닌가요?

바쁜 현대인들에게 어떤 스토리를 만들어 제시하느냐가 앞으로 품질 경쟁에 못지 않은 중요한 승부라 생각합니다. 이미 저희 기자들은 그런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수많은 매체는 물론, 독자의 24시간을 두고 넷플릭스나 유튜브, 책, 잡지, 스포츠경기 등 다양한 것들과 경쟁을 벌이고 있죠. 최근 승승장구하는 기업이나 브랜드, 제품들은 아이폰이나 테슬라나 아마존이나, 쿠팡 등 저마다의 스토리를 만들어 가고 있죠. 아이돌그룹도 앨범이나 노래 제목, 가사에 자기들만의 여정이나 세계관을 담는 시대이지 않습니까.

현대 리유니온이 공개한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프로젝트, 현대자동차 공식 홈페이지

그런 면에서 저는 현대차그룹에 여전히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차가 많이 팔린다는 얘기는 아니고요. 지난 19일 이탈리아에서 ‘포니 쿠페’를 복원해 공개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 기사를 쓰면서 그런 생각이 더 강해졌습니다.

당시 기사에 대한 온·오프라인의 여러 반응을 유심히 봤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현대차도 고유의 스토리를 만들고 있다고 말이죠. 이를 유식하게 헤리티지(heritage)라고 부른다 합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이날 “과거를 정리하고 기억해야 앞으로의 방향성을 잡고 새로운 걸 해나갈 수 있다”라는 취지로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우연히도 지난 18일 한국을 찾은 재규어 랜드로버의 레너드 후르닉 최고사업책임자(CCO)도 기자 간담회에서 ‘헤리티지’에 대해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역사이지만 미래이기도 하다”라는 얘기였죠. 포니 쿠페 콘셉트카를 만들고도 1980~1990년대 언저리에 그걸 잃어버려서 2023년에 다시 복원하는 ‘웃픈’ 행위 자체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스토리의 중요성이 오늘날 얼마나 커졌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내용을 기사로 쓴 자로선 이날 현대차그룹의 포니 쿠페 복원이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스토리로 다가왔다 느꼈습니다. 할아버지가 만든 차를 손자가 복원한다는 익숙하면서도 영화 같은 스토리. 요즘과 확연히 다른 50년 전의 차로 지금의 대한민국의 기틀을 만든 기업가의 이야기. 그리고 그의 후손들의 이야기를 곱씹으면서 연륜 있으신 독자들은 그 시기를 떠올리곤 했던 것 같습니다. 거기다 요즘 ‘레트로’가 트렌드이기도 하지요.

이날을 계기로 ‘포니’뿐만 아니라 다양한 과거들이 현재의 이야기가 되어 나타날 거란 예감이 듭니다. 글로비스의 배에 미국으로 수출되는 ‘2025년형 올 뉴 포니’가 실리지 않는다고 100% 단언할 수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드립니다. 현대글로비스의 스토리는 무엇인가요. 여러분이 세계 곳곳으로 실어나르는 수많은 물건들과 그 물건들을 거쳐가는 손길들, 그 물건들이 탄 배에는 얼마나 많은 스토리가 숨어 있을까요. 그 어딘가 있을 이야기를 찾아서 저에게도 얘기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더 많은 독자께 전달해 드리지요.

조선일보 정한국 차장
202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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